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블로 아이마르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youtube(zH4iTifYHmk)]|| [[리버 플레이트]] 시절과 청소년 국가대표팀에서부터 이미 기량이 완성된 선수였다. 같은 국적의 선배였던 드리블 귀신인 [[아리엘 오르테가]]의 뒤를 이어서 '제2의 [[마라도나]]' 호칭을 물려 받았다. 또한 [[요한 크루이프]]의 극찬을 받은 적도 있다. 마라도나처럼 창조적이고 기술적이었으나, 마라도나와는 다르게 결정력과 몸싸움 능력이 부족한 게 흠이었다. 아이마르가 당대 보통의 플레이메이커들과 차별화 되었던 최대의 특징은 [[카카]]와 마찬가지로 빠른 주력에 의한 볼 운반과 키핑이었다. 다만 농구의 [[포인트 포워드]]에 가까운 하이브리드 형태의 플레이메이커였던 카카와는 달리, 아이마르는 다소 순수하게 경기 운영에 힘을 쏟는 플레이메이커였다. 당대의 [[지네딘 지단]],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등을 위시한 플레이메이커들과는 다르게, 작고 빠르며 역동적인 경기 운영을 즐겨하던 선수였다. 이는 전성기를 보냈던 팀인 발렌시아의 사정상 다소 반강제적인 부분도 있었다. 전성기 시절인 발렌시아 시절엔 아주 가끔씩 통쾌한 슛으로 골을 기록한 적들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론 슛팅을 많이 때리는 편은 아니었고 체구에 걸맞게 슛 파워는 다소 빈약했다. 실제 골 기록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동시대 라이벌이었던 [[후안 로만 리켈메]]가 [[비야레알]]에서 좋은 득점력을 보여주었던 것과 비교하면 아쉬운 부분이었다. 다만 이것은 그의 결정력의 문제라기보단 당시 발렌시아의 부흥을 이끌었던 [[헥토르 쿠페르]]나 [[라파엘 베니테즈]]의 전술이 극도로 수비적인 [[4-2-3-1]] 시스템이었기 때문인데, 아이마르는 이적 첫시즌엔 어울리지 않는 [[섀도우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뛰었으며, 베니테즈 감독 부임 이후로는 수비적인 역습 시스템 속에서 [[비센테 로드리게스]]와 함께 거의 모든 볼 운반과 패스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골까지 넣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발렌시아는 [[디에고 시메오네]]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같은 '''저득점-저실점 운영'''을 하는 팀이었으며, 3년간 리그에서 두번이나 우승을 차지했음에도 경기당 골 기록은 처참했으며, 이는 아이마르의 책임이 아닌 최전방의 득점원들인 [[욘 카레브]]와 살바 바예스타 등의 부진이 매우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후 공격형 미드필더 기용을 선호하지 않는 컴팩트한 전술을 운용하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와 [[키케 산체스 플로레스]] 감독을 거치면서 아이마르도 자연스럽게 부침을 겪었다. 당시 발렌시아의 전술은 골키퍼 [[산티아고 카니자레스]]와 [[로베르토 아얄라]]가 이끄는 막강한 수비진 그리고 [[다비드 알벨다]]와 [[루벤 바라하]]가 지켜 주는 철통 방어 속에서, 공격 시엔 아이마르에게 일단 볼을 주고 서커스를 시키는 것이었다. 아이마르가 홀로 우격다짐으로 무언가를 창조해내면, 스페인의 [[램파드]]라 불리우던 [[루벤 바라하]]가 공격 상황에 난입하여 해결하거나, [[욘 카레브]]가 포스트 플레이를 하거나, [[비센테 로드리게스]]나 [[파비우 아우렐리우]]가 개인 기량으로 골을 넣는 것이 주된 패턴이었다. 이후, 빈공 문제는 [[다비드 비야]]가 영입되면서 다소 해소되었으나, 아이마르의 입지는 옛날같지 않았다. 아이마르의 최대의 장점은 예측하기 어려운 유니크한 테크닉과 상황 판단, 팀플레이였다. 볼을 갖고 묘기를 부리는 듯 기묘한 테크닉이 뛰어나면서도 동시에 실용적인 기술들을 많이 구사했다. [[호나우지뉴]]처럼 화려한 헛다리 등의 삼바 축구식 기술들은 구사하지 않았으며, [[엔조 프란체스콜리]] 같은 남미의 '''엔간체'''들에게서 볼 수 있는 간결한 테크닉을 많이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https://youtu.be/io2FMwKEFk8|바르셀로나를 상대할 때의 기술들이나]], [[https://youtu.be/PV3rPaxEE_E|맨유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의 활약에서 잘 나타난다.]] 남미 역사상 손꼽히는 플레이메이커 중 하나인 라이벌 [[리켈메]]와 비교하면 경기 지배력과 운영 능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일찍이 쿠페르 감독 밑에서 유럽 축구를 접하며 몸소 익혔던 아이마르는 플레이에 좀 더 유동성이 있었고, 덕분에 전방에서 수비하는 것에도 적극적인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거친 태클들도 마다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뛰었으며, 당시 남미 테크니션들에게선 매우 보기 드물게 '''이타적이었다.''' 실제로 공을 끄는 플레이보다는 짧은 패스 위주의 경기 운영에 적재적소의 드리블과 돌파를 더하던 유형이었다. 이는 훗날 [[리오넬 메시]]에게도 영감을 주는 부분이었다. 현재 메시의 플레이스타일은 아이마르한테서 가져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소년 시절 메시는 작은 신장과 불리한 신체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드리블과 패스로 경기를 풀어가던 아이마르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으며 자신의 우상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자신의 드리블과 패스가 아무리 뛰어나도 동료들과 연계하려는 이타적인 후속 무브먼트가 곧바로 동반되지 않으면, 2:1 패스와 공간 창출은 힘든 것이기 때문에 아이마르는 늘 2:1 패스를 노렸고, 이것을 매우 잘했다. 이러한 부분은 당시 본인 위주의 정적인 움직임에만 머물던 클래식한 10번들에게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아이마르는 기술적이면서 동시에 헌신적이었으며, 이타적이고 경기 운영이 뛰어났다. 빠른 속공 게임과 정적인 지공 게임을 모두 컨트롤 할 수 있는 '''운영 위주의 플레이메이커'''였으며, 그 시대의 공격형 미드필더답게 스탯 생산성은 현대의 선수들에 비해서 뛰어나지 못했으나, 그것을 상회하는 높은 클래스를 가진 선수였고, 2000년대 초중반 [[카카]]와 더불어 '남미에서 건너온 재능이 유럽식 경기 운영을 받아 들여 성공을 이룬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로 남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